문학 활동
1861년 형과 함께 잡지 《시대》를 발간하고, 《학대받는 사람들》, 《죽음의 집 기록》을 연재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나, 이듬해 발행 금지당하였다. 1864년 형과 함께 새로운 잡지 《세기》를 창간하였으나 실패하여 큰 빚을 지게 되었다. 1866년 걸작 《죄와 벌》을 완성하였다. 1867년부터 외국, 특히 드레스덴에 거주하면서 《백치》, 《악령》 등을 쓰고 귀국하였다.
1874년 《미성년》을 발표하여 큰돈을 벌어 빈곤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시베리아 유배 시절에 악화한 지병인 간질과 취미로 즐기던 도박 등이 창작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의 작품 속에 중요한 요소들로 간질과 도박 등이 자주 등장한다. 도박은 그의 인생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고, 빚을 갚기 위해 출판사와 무리한 계약을 하여 마감에 쫓기는 나날을 보냈다. 바쁜 일정 때문에 《죄와 벌》, 《도박꾼》 등은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는 구술필기의 형태로 작성되었다. 속기사였던 안 나는 훗날 도스토옙스키의 두 번째 부인이 되었다.
소설 이외의 저서로는 《작가의 일기》가 있다. 이것은 단순한 일기가 아니라 잡지 《시민》에서 도스토옙스키가 담당했던 문예란에 게재했던 것으로, 문예 지평, 정치·사회평론, 에세이, 단편 소설, 강연 원고, 종교론 등을 포함하고 있어 훗날 도스토옙스키 연구에 귀중한 문헌 자료가 되었다.
1880년 그의 최후의 걸작인 장편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원고를 맞췄다. 그즈음에는 이미 사물을 분간하지 못할 만큼 눈이 어두워져 있었고 도스토옙스키가 침대 누워 구술한 것을 아내 안 나가 속기하여 작품을 완성했다. 그로부터 몇 달 후인 1881년 1월 28일에 폐동맥 파열로 인하여 가족의 간호를 뒤로 하고 6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는 임종 직전 아내에게 시베리아 교도소에 있었던 시절 지니고 있었던 성경책을 읽어 달라고 부탁했고 같은 날 밤 11시 성경책을 가슴에 안고 죽었다. 유해는 같은 달 31일 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르 넵스키 사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유년 시절
도스토옙스키는 모스크바에 있는 마린스키 자선 병원의 관사에서 태어났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이하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11월 11일(구력 10월 30일) 모스크바에서 모스크바 마린스키 자선 병원 의사인 미하일 안드레예비치와 어머니 마리아 표도 로브나 사이 7남매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나 15살 때까지 태어난 집에서 지냈다. 아버지 쪽이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당시 러시아에서 의사는 중인 계급이었으므로 넉넉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매우 거친 성격이었으므로, 자식들은 아버지를 두려워했다.
도스토옙스키는 1834년 열세 살 때 형 미하일과 함께 모스크바의 예르마크 기숙학교에 입학하여 3년간 학문을 배우고 수업받았다. 1837년 온화하고 사랑을 베푸는 성격으로 자녀들에게 천사 같은 존재였던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어머니 죽음은 가족에게 큰 충격이었으며, 1837년 아버지는 장남 미하일과 열여섯 살이 된 차남 도스토옙스키를 공병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보냈다.
1838년 도스토옙스키는 공병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여 군사 교육받았다. 소심하고 예민하며 병으로 인하여 몸이 쇠약했던 소년 도스토옙스키에게 군사 훈련은 성격에 맞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문학은 유일한 위안으로,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 습작을 서로 평가하고 논쟁을 벌이곤 하였다. 낭만주의 사조가 유행하던 시기로 도스토옙스키도 이때 프리드리히 실러에 빠져 있었다.
1839년 6월 6일, 도스토옙스키의 아버지가 영지의 농노들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도스토옙스키의 아버지는 아내가 죽은 후 영지로 내려가 생활했는데, 농노들을 가혹하게 다루었던 것이 죽음의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테르부르크에 있던 형제는 큰 충격을 받았으며, 전기 작가 밀레르파에 따르면 이 시기에 도스토옙스키를 평생 괴롭힌 간질 발작이 처음 나타났다고 한다.
1841년 8월, 도스토옙스키는 공병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성 제도구가 소위로 관직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문학으로 향하는 마음과 생각과 열정을 저버리지 못하고, 작가가 되어 문학에 전념하기 위하여 1844년 10월 제대하였다.
평가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 문학의 최고 거장 가운데 한 명으로 불리며 20세기 소설에 더할 수 없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신흥 자본주의 억눌림 밑에서 신음하는 소시민층의 대변자인 동시에 열렬한 슬라브주의자였다. 그의 작품은 비단 문학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철학·종교·사회 문제 등 각 방면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대표작으로는 《죄와 벌》(1866년), 《카라마조프의 형제》(1879년 ~ 80년) 등이 있다. 진보적 사회 운동하다가 탄압받은 경험이 그의 문학 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작품들은 당시 퍼지고 있던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지식층의 폭력적인 혁명을 부정하고, 기독교, 특히 정교회 교리에 바탕을 둔 기독교 사상을 담고 있다. 그의 기독교 사상은 기독교의 교리와 사상을 변증 하는 호교론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이름으로 종교재판을 행한 기독교의 폭력을 비판함으로써 교회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그의 소설은 흔히 이질적, 극단적 심리의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인간 심리에 대한 놀라운 이해력을 보여주고 당대 러시아의 정치, 사회, 정신세계 등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때로 그를 실존주의의 창시자로 여기기도 하는데, 발터 코프먼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지하실의 수기》를 "실존주의를 위한 최고의 서곡"이라 묘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