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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철학, 종교학

by 럭키영 2023.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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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윤리 형이상학의 정초》의 첫 부분에서, 이마누엘 칸트는 고대 그리스 철학을 자연학과 윤리학 그리고 논리학의 세 학문으로 나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 17세기의 물리학(또는 자연 철학), 19세기의 심리학과 20세기의 인공 지능과 언어학에 이르기까지 - 개별 학문 분야로 분리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은 학문 그 자체, 고대 그리스에서 지혜에 대한 사랑을 의미했다고 뜻하였고 전통상으로 철학은 세계와 인간과 사물과 현상의 가치와 궁극적인 뜻을 향한 본질적이고 총체다운 천착을 뜻했다. 이에 더하여 현대철학은 철학에 기초한 사고인 전제나 문제 명확화, 개념 엄밀과 명제 간 관계 명료화를 이용해 제 주제를 논하는 언어철학과 논리학에 상당한 비중을 둔다. [3] 철학이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의 필로소피아(지혜에 대한 사랑)에서 유래하였는데 여기서 지혜는 일상생활에서의 실용하는 지식이 아닌 인간 자신과 그것을 둘러싼 세계를 관조하는 지식을 뜻한다. 이를테면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이 포함된다. 이런 일반 뜻으로서 철학은 어느 문화권에나 오래전부터 존재하여 왔다. 심지어 문자가 없는 사회에서도 세계를 향한 깊은 지혜는 발견된다. 서구화 이후, “철학”은 대체로 고대 희랍 철학에서 시작하는 서양철학 일반을 지칭하기도 하나 철학 자체는 동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종교학
컴퍼스는 신의 창조 행위를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다. (13세기 사본)
대부분의 역사학자는 종교의 기원을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탐색한다. 이 시기 동안의 대부분의 종교적 믿음은 모계 신과 하늘 신에 대한 숭배, 또한 신으로서의 해와 달에 대한 숭배(태양 신앙 참조)로 이루어져 있다.

종교의 어원
종교(宗敎)는 본래 산스크리트어를 번역한 불교 용어로 중국에 불교가 전래하였을 때 능가경에서 "근본이 되는 가르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Siddhanta Desana를 종교로 한역한 용어였다. 한편, '신과 인간을 잇는다.'라고 의미하는 religion을 종교로 해석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조상신(示)을 모시고 제사하는 종갓집에 사용되는 '으뜸 종(宗)'에 '가르칠 교(敎)'를 사용한다. 즉 으뜸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특히 기원전 6세기경에, 동양과 서양 양쪽에서 새로운 철학과 종교가 나타났다. 시간이 흘러, 초기의 주요 신앙 중의 일부가 된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와 같은, 세계 곳곳의 종교에서 다양한 변화가 생겨났다. 동양에서는, 3개의 유파가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인들의 지배적인 사상이었다. 그것들은 도가와 법가, 그리고 유가였다. 경지에 도달한 것으로 보이는 유교 전통은, 정치 도덕에서 법의 강제가 아닌 전통에 대한 권위와 모범 쪽을 향했다. 서양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작업으로 대표되는 그리스 철학 전통은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전쟁에 의해 유럽과 중동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아브라함 종교들은 하나의 공통된 고대 셈족 전통으로부터 유래한 종교들이다. 그리고 꾸란에서는 예언자로서, 그리고 또한 창세기 20장 7절(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줄을 줄 알지니라)에서도 예언자로 불리고, 히브리 성경/구약 성서에서 이야기가 전해지는 장로의 하나인 아브라함 (기원전 1900년경)을 신봉하는 이들에 의해 조사되었다. 이는 대규모의 일신교(오직 하나의 신만을 인정하고 신앙하는 종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따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종교들과 관련된 하나의 거대 집단을 형성하고, 일반적으로 세계 종교 신자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를 포괄한다.

종교
종교인들은 주로 초월적인 대상, 세계에 대한 궁극적인 진실, 사람은 어떠한 도덕을 지키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각자의 믿음을 갖고 있다. 종교(宗敎)는 초월적, 선험적 또는 영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는 이들로 이루어진 신앙 공동체와 그들이 가진 신앙 체계나 문화적 체계를 말한다. 종교는 인간과 비롯한 존재의 우주적 질서에 대한 나름의 설명을 제공하려 하기도 한다. 인본주의를 비롯한 근현대 철학에서 많은 학자가 종교를 비이성적인 것으로 비판하였으나 심리학적으로는 종교가 삶의 불확실성을 줄여주고 심신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효과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종교개혁가 장 칼뱅은 경건은 종교를 낳는다고 한다, 경건이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결합한 것이라고 한다. 순수하며 참된 종교는 하나님에 대한 엄숙한 두려움과 결합한 신앙인이라고 한다. 여기서 두려움이란 자발적인 경외를 내포하고 있으며, 성경에 규정된 예배를 수반한다. (기독교강요)


장 칼뱅

인문주의 변호사로 교육받았으며, 1530년경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회심했다. 프랑스에서 개신교도에 대한 광범위한 폭력 사태로 긴장이 고조된 후, 스위스의 바젤로 피난하여 1536년에 《기독교강요》 초판을 출판했다. 같은 해에 제네바의 프랑스인 기욤 파렐에 의해 등용되어 제네바로 이동한 뒤, 도착한 한 주 내내 설교하였다. 그러나 시의회는 그들의 주장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거부하였고, 이 둘은 모두 추방되었다. 이후 마르틴 부서의 초청으로 스트라스부르로 나아가 그곳에서 프랑스 난민 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이런 와중에도 제네바에서 벌어지는 개혁 운동을 계속 지지하였고, 결국 1541년에 다시 초대받아 제네바의 교회를 이끌었다.

칼뱅은 복귀 후에 몇몇 도시 권력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형태의 교회 정부와 예전을 도입했다. 이 기간에 미카엘 세르베투스가 제네바에 도착했는데, 그는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양측 모두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된 자신만의 특유 반삼위일체론을 주장했다. 따라서 칼뱅은 그를 고발했고, 시의회는 그를 화형에 처했다.

그를 지지하는 개신교도 난민들이 도시에 유입되고 새로운 시의회가 구성됨으로써 칼뱅의 반대자들은 도시에서 쫓겨났다. 칼뱅은 제네바 대학교를 세우는 등 제네바와 유럽 양쪽에서 종교개혁을 추진하는데 말년을 보냈다.

칼뱅은 기독교 변 증가로서 많은 논쟁을 벌였고, 필리프 멜란히톤과 하인리히 불링이거든 많은 종교개혁가와 긍정적인 내용의 서신들을 교환했다. 저술가로서 《기독교강요》(1536)를 썼는데, 이 책은 이후 기독교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역사와 문학 등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성경 주석이나 신학 논문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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