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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산드로 보티첼리

by 럭키영 2023.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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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보티첼리는 1445년경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필리페피(Alessandro di Mariano Fillipepi)이지만, '작은 술통'이라는 뜻을 가진 보티첼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로, 메디치 가문과 그 가문 추종자들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그의 초상화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산드로 보티첼리

보티첼리는 금세공인 수습생으로 초기 미술 교육받았지만 재능이 드러나 피렌체 화가 프라 필리포 리피 밑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봄〉(1482년), 〈비너스의 탄생〉(1486년), 〈찬가의 성모〉(Madonna of the Magnificat, 1481년) 그리고〈성모 마돈나〉(1481년) 등이 있다.

보티첼리는 한평생의 삶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인물이다. 그의 작품들도 수많은 상징을 담고 있어 보는 이에게 의문을 던진다. 그뿐만 아니라 주제 혹은 작품에 묘사된 인물이나 대상의 의미를 둘러싼 학자들의 다양한 해석으로 인해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어린 보티첼리가 금세공사가 되는 훈련을 그만두겠다고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했더라면, 세상은 가장 위대한 피렌체 르네상스 화가의 탄생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작은 술통'이란 뜻의 보티첼리라 불리던 소년은 1464년 초기 르네상스 대가 프라 필리포 리피의 제자가 되어 위대한 화가로서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다.
보티첼리는 과도하게 치장하고 형상을 힘찬 선으로 표현하기를 선호하던 스승의 방식이나 수법을 좇아 그대로 했기 때문에 그의 많은 초기 작품들에서 리피의 독특한 양식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프라 리피가 스폴레토로 떠나자, 보티첼리는 화가 겸 조각가인 안토니오 폴라이우올로,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와 함께 작업했다. 이 두 미술가는 근육질의 인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좋아했는데,
보티첼리는 그들의 조각적인 접근법에 매력을 느끼고 이를 모방하고 본받았다.

이후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제자로 들어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그렸다.
1470년에 그는 피렌체에 자신의 공방을 차려 독립했고, 첫 번째 의뢰 작인 (1470)을 완성했다. 그의 재능은 곧 영향력 있는 메디치 가문의 관심을 끌었고, 보티첼리의 역사화, 신화화, 종교화, 초상화에 매료된 메디치가로부터 작품 의뢰가 끊이지 않았다. 메디치가뿐만이 아니었다. 1481년에는 교황 식스토 4세의 초청으로 로마에 가서 시스티나 성당의 벽면에 프레스코를 그렸다.

보티첼리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 그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다.
메디치 가문은 15~17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들은 예술과 인문주의가 융성한 환경을 만들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탄생과 발전을 끌어내는 큰 역할을 하였다. 메디치 가문은 자신들의 권력 아래 피렌체를 두었으며, 예술가들에게 후원을 제공하여 그들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보티첼리는 이 가문의 후원으로 역작을 남길 수 있었다.

피렌체의 미술 양식, 제단화, 프레스코, 다양한 크기의 원형 그림들을 연구했고, 환상적인 풍경과 감동적이고 생기 넘치는 인물들을 조화롭게 구성하는 방법을 창안해 냈다. 메디치가가 주문한 많은 작품을 보면 대부분이 신화적인 주제들로, 고전 고대를 선호했음을 알 수 있다. 세속적인 그림에서의 보티첼리의 독특한 양식은 모호한 알레고리적 표현 형식을 전형적으로 사용한 (1482경)과 (1485경)에서 절정에 달했다.

보티첼리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이다. 이 작품은 1486년경에 그려졌으며, 사랑의 여신 비너스가 거대한 조개껍데기를 타고 해안으로 항해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다른 유명한 작품으로는 〈봄〉(Primavera)이 있다. 이 작품은 1482년경에 그려졌으며, 고전 신화의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보티첼리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과 섬세함 세부 묘사, 그리고 우아하고 기품있는 여성상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신체 표현에서 양감이나 무게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고, 비례나 자세가 왜곡된 것 또한 보티첼리 작품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비너스는 오른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왼손과 머리카락으로는 음부를 가리고 있는데, 이러한 자세는 비너스 푸디카(venus pudica), 즉 정숙한 비너스라는 고전 조각의 특정 유형을 따른 것이다. 그리스 최고의 화가 아펠레스(Apelles)의 롤 묘사한 로마의 학자 대 플리니우스의 글이 보티첼리 그림의 전체 구성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간주한다.

또한 비너스의 자세는 당시 메디치가에 소장되어 있던 유명한 고전 조각인 산드로 보티첼리는 1445년경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필리페피(Alessandro di Mariano Fillipepi)이지만, '작은 술통'이라는 뜻을 가진 보티첼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로, 메디치 가문과 그 가문 추종자들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그의 초상화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이야기> 그림의 내용은 처음 '백마를 탄 남자에게 쫓기면서 개에 물린 여인', 두 번째 '쓰러진 여인의 배를 가르는 남자', 세 번째 '연회장에서 다시 개에게 물린 여인', 그리고 마지막 '결혼식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처음 세 개의 그림은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고 네 번째 결혼식 장면은 미국의 개인 콜랙터가 소장하고 있다.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이야기>는 이탈리아의 작가 보카치오의 단편소설 '데카메론'에 등장하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이 이야기는 라벤나의 부유한 귀족 집안인 오 네스티 가문의 상속자 나스타조가 자기보다 신분이 높은 집안의 파올라를 깊이 사랑했지만, 그녀는 그를 차갑게 대할 뿐이었다. 나스타조의 친구와 친척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그가 자살이라도 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얼마간 라벤나를 떠나서 있으라고 그를 떠밀었다. 나스타조는 절망과 슬픔에 방황하게 되고  라벤나 외곽 숲 속에 천막을 설치한 후 친구들과 어울려 시름을 날려 버리려 애썼다. 

보티첼리가 Lorenzo 가문의 부탁에 의해 4개의 패널(Tempera on panel)로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나오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토대로 그려졌다. 이 작품은 총 네 개의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2,3번째 작품은 현재 프라도 미술관 소장 중이며 네 번째 작품은 현재 개인이 소유 중이다.

피렌체의 조형적 전통과 스승의 영향이 있었으나, 그의 재능은 본질적으로 다른, 고딕적 전통과 시에나파의 양식과의 결합에 있다. 〈비너스의 탄생〉은 사실적 수법에서 벗어나, 상징과 장식을 강조하여 시적 세계를 이룩한 그의 대표작이다. 만년에는 열광적인 신앙에서 신비적 성격을 띠게 되어 〈신비의 십자가〉 등을 그렸다.

말년에 보티첼리는 도미니코회의 수도자 사보나롤라 수사의 영향을 받아 양식과 사고방식에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사보나롤라의 설교를 들은 그는 그동안 자신이 그렸던 누드화들이 죄악이라며 대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불태워버리기까지 했다. 죽기 전까지, 그는 필생의 포부로 단테의 『신곡』(1308~1321)에 삽화를 넣는 작업에 전념했으나, 건강이 악화하여 꿈을 완성하지는 못했다.

보티첼리는 1510년에 (65세) 사망했다. 그는 피렌체의 오그니산티 교회에 있는 베스푸치 가문의 예배당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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