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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피트 몬드리안

by 럭키영 2023.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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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 몬드리안

피트 몬드리안 (1872년 3월 7일~ 1944년 2월 1일)은 네덜란드의 근대 미술 화가이다. 1872년 네덜란드 아메르스포르트의 신실한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아 화가였던 숙부에게서 그림을 배웠는데 이때 그의 숙부는 자연미를 중시했다. 몬드리안은 추상화의 초기 화가에 속하며, 네덜란드 구성주의 회화의 거장이다. 후의 몬드리안의 작품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그 자체다. 20세에 교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같은 해 암스테르담 국립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이때 당시만 해도 빈센트 반 고흐와 야수파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그림을 주로 그리고 있었다.
몬드리안은 테오 판 두스부르흐가 만든 데 스틸(De Stijl) 예술 운동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그는 자신이 신조형주의(Neo-Plasticism)라고 부른 비구상적인 형태를 발전시켰다. 그의 그림들은 가로와 세로의 검은 선의 격자(grid)와 삼원색을 사용한 것들이 많다.

1911년 입체파의 그림을 접하면서 그의 작품이 크게 변화한다. 현대미술을 더 가까이 접하기 위해 그해 파리로 건너가 입체파를 연구하기 시작, 풍경을 점차로 추상화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1914년, 잠시 귀국한 사이 제1차 세계대전이 갑자기 일어나면서 네덜란드에 아무의 도움도 받지 못하며 혼자가 된 몬드리안은 이즈음부터 수직, 수평선만으로 그림을 구성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려진 작품이 우리가 생각하는 몬드리안 스타일의 그림인데, 이렇게 자신의 독특한 개성이나 수법을 정립하는데 예상보다 상당히 많은 나이 42세. 그야말로 대기만성의 전형인 셈이다.

1917년에는 네덜란드에서 다른 현대 화가들과 함께 더 스테일(De Stijl, 양식)이란 그룹을 형성하고 같은 이름의 잡지를 창간하였다. 그는 이 모임에서 자기 작품을 '신조형주의'라고 규정하고 잡지에 자신의 신조형주의 이론에 대해 게재하였다. 그는 이 글에서 수직선, 수평선, 원색, 무채색만으로 표현되는 자기 작품에 대해 진리, 근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였고 이를 위해 그림을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하였다고 주장한다.

1919년 전쟁이 끝난 후 몬드리안은 다시 프랑스 파리로 향한다. 파리에서 살아나갈 방도를 찾아서 가벼운 수채화를 그리는 한편, 계속 추상화 탐구를 지속하던 몬드리안은 이때 더 스테일 그룹과 멀어지게 된다. 이들에게 갈등을 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대각선을 그림에 넣느냐는 문제였다고 한다. 이후 그는 더 스테일 대신 바우하우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자신의 아틀리에를 자기 작품 스타일에 맞추어 개조한다.

파리에서 그의 생활은 그의 작품 세계만큼이나 매우 엄하고 철저했다. 개조한 아틀리에만 해도 삼원색과 무채색의 직사각형 보드만으로 꾸미고 색의 통일을 위해 장식용 꽃까지 흰색으로 칠해놨다. 또한 식생활 면에서도 비슷해, 손님이 왔을 때도 콩, 감자 요리 등으로 소박하게 차려놓고 먹었다고 한다.

그러던 1928년, 그의 나이 56세에 지인의 딸 리리를 우연히 만나 교제를 시작한다. 이때 그의 아틀리에에 유일하게 자연색인 꽃 화분을 장식해 놓을 정도로 둘의 사랑은 깊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 리리의 나이는 20살이었다. 당연하게도 둘의 사이는 리리의 아버지의 반대가 심하였고, 그녀가 아버지의 강요로 네덜란드로 돌아가면서 둘의 사랑은 좌절되었다.

60대 들어,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던 몬드리안의 작품은 재평가받기 시작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이 인기가 높아졌고, 그의 그림을 모티브로 한 몬드리안 룩이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몬드리안은 프랑스 파리에서 영국 런던으로, 다시 미국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뉴욕의 역동적인 분위기, 당시 유행하던 비밥 재즈에 심취한 몬드리안은 뉴욕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기존의 검은 수직선, 수평선에서 원색의 선으로 캔버스를 채운다. 
그의 성숙한 작품들에서는 직선, 직각, 기본 색상, 검은색, 흰색 및 회색의 가장 간단한 조합을 사용했다. 이에 따라 작품은 극도의 형식적 순수성을 지니며, 작가의 조화로운 우주에 대한 영적 믿음을 담고 있다. 
몬드리안의 유명한 신조형주의적인 그림들은 강렬한 추상성이 특징이다. 그의 그림의 주된 모티브는 빨강, 파랑, 노랑 등의 원색을 가진 직사각형 면과 그와 섞인 흰색과 검은색 면, 그리고 검은색 선들이다. 이런 형태를 중요하게 다룬 추상화는 신조형주의가 추구한 양식의 두드러진 점이 되었다.

몬드리안룩(Mondrian Look)은 1966년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이 디자인한 것으로, 피트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이브 생로랑은 이러한 몬드리안의 스타일을 패션에 접목해 몬드리안 룩을 만들었다. 이는 패션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몬드리안 드레스는 네덜란드 국립 암스테르담 미술관에 전시되기도 했다.

피트 몬드리안의 작품은 전 세계 여러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그중 하나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헤이그 시립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에는 몬드리안의 초기 작품인 빨간 나무-1908년, 회색 나무-1912년, 등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도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파랑과 빨강의 구성-1929년, 브로드웨이 부기우기-1942~1943년 등이 소장되어 있다.

1940년에 미국으로 망명해서 귀화했다. 1944년 2월 뉴욕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몬드리안의 개인적인 삶은 그의 예술적인 경력만큼 잘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그가 안정적이면서 창조적인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그의 아버지는 보수적인 켈빈주의 정치인 Abraham Kuyper 주변에 형성된 개신교 정통주의 원으로 속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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